사실 임요환보다 앞서 데뷔한 게이머들이 여럿 있음.
해변킴도 그중 하나. 임요환보다 데뷔 시기가 빠름.
자기는 재능이 넘쳤다고 말함
실제로 스타 초창기 판타 캐리건 아이디 쓰던 시절.
김정민은 상대가 게임을 피해서 레더를 못돌릴 정도였음 ㅋㅋ
하지만
이전까지 여러 대회가 있었고, 게이머들은 주로 연습을 레더를 하며 보냄.
롤로 치면 랭겜
현재 이스포츠 연습의 뼈대를 세움
임요환을 중심으로 IS팀이 만들어지고,
체계적으로 연습하게 되었다고 함
선기도 ㅡㅡ
테테전 공2업 개념
출처 - 도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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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요환이 위대한 이유
2002년 나는 3년 넘게 속해 있던 팀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스폰서 없이 대회 상금만을 목적으로 활동하는 데 많은 한계가 느껴졌고, 진정한 프로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홀로 서서 스폰서를 찾으며, 나는 WCG에서 우승했다. 그래서 나의 가치를 다시 한번 확인시키고 ‘동양 오리온’이라는 회사로부터 후원을 받는 프로선수가 되었다. 하지만 개인 스폰서를 받으며 1년 동안 활동하는 동안 나는 팀원들의 필요성 을 절실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스타크래프트는 대전 게임이기 때문에 실제 대회에서의 경기처럼 철저한 연습이 뒷받침돼야 리그에서 성적을 거둘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된 팀원들과 실전 같은 연습이 필요했다.
지금처럼 개인 스폰서링을 받는 풍토는 게임판을 오히려 축소시키고, 프로게이머의 수명을 단축시킨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20대 초반에 프로게이머의 수명이 다하는 것은 바로 안정적인 생활과 연습환경이 뒷받침 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프로게이머로 오래 활동하고 싶었고, 후배들 또한 안정된 직업으로서 프로게이머 활동을 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한동안은 스폰서 없이 팀 활동에 주력했다. 감독님께서는 팀을 창단할 기업을 열심히 찾아다녔고, 드디어 우리는 2004년 4월 SK텔레콤과 함께 ‘프로게임단 T1’을 창단했다.
만약 내가 홀로서기를 감행하지 않았다면, 우리 팀이 ‘4U’라는 이름으로 스폰서 없는 기간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지금 SK텔레콤 T1 팀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SK 텔레콤 소속 프로게이머 ‘임요환’ 또한 없었을 것이다.
나는 동양의 스폰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도, 나와 팀원들이 SK텔레콤의 프로게임팀을 창단할 것이 라는 확신도 없었다. 다만 내가 그리고 우리 팀원들이 홀로 섰을 때 우리는 프로라는 이름을 달고 우리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러한 결단이 지금의 나를 만들 수 있었다.
월간중앙 2005년 8월호 '내 인생의 결단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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