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결혼기념일 글 포텐 보내주신 것에 감사드리며 약속드린대로 어떻게 일본인 간호사 아가씨와 만나 결혼까지 했는지 써보겠습니다.
먼저 음여갤이니 주말에 찍은 사진들 보시구요. 새로 산 아이폰 XR 테스트도 할겸 오랜만에 온가족이 둘이 처음 만났던 곳에 다녀왔어요. 시행착오 무한 반복 후 겨우 글 앞에 유튜브 직접 링크를 걸었네요. 관심있는 분들은 한 번 보시길.. 왕초보가 iMovie로 만들어 처음 올린 광고 없는 동영상입니다. 울 가족들도 멀리서나마 등장한다는..
다소 긴 글이라 따분할 수도 있으니.. 이 글 읽는 회원님들 본인이 과거의 저로 빙의해 읽으시면 좀 더 낫지 않을까 싶네요. ㅎㅎ 좋아하는 트와이스나 프듀 101 멤버를 여주인공으로 넣고 사진, 동영상 촬영지를 배경으로 삼아 첫만남 상황을 상상해 보시길.. ㅎㅎ
당시 저는 호주 브리즈번 (다음 달 17, 20일에 축구 국대 평가전이 있는 곳) 인근 탕갈루마 리조트라는 곳에서 상주직원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유명인 가족들도 자주 찾는 꽤 이름 알려진 곳입니다.
한국에서 이름없는 지방대 출신에 성적도 시원찮아 취직을 못 하다보니.. 서류전형 조차 단 한 번도 통과된 적이 없었구요. 그래서 이 길이 아닌가보다 다른 길을 찾아 온 곳이 호주였지요. 생각해보니 그 때 9년 사귄 과CC 여자친구한테도 차였음. ㅎㅎ
어쨌거나 호주에 와서도 좌충우돌 했지만 운좋게 리조트 정직원으로 취직을 하였습니다. 운칠기삼도 후하다고 표현해야 맞을듯.. 취업 스토리도 얘기하면 길어서 이 정도로..
섬 리조트이다보니 가끔 쉬는 날 배 타고 브리즈번 시내에 나왔는데 돌아가는 날 아침 선착장행 셔틀버스 타는 곳에서 집사람과 처음 마주쳤답니다.
저는 리조트 Guest service - 고객 서비스 부서 직원, 집사람은 혼자서 여행중인 예쁘장한 아가씨. 그래서 먼저 말을 걸었죠.
“너 탕갈루마 가니? 나 그 회사 직원인데.. 거기 가는거면 여기가 버스 기다리는 곳 맞다.” 라고..
물론 처음엔 이상한 놈이 접근한다고 집사람은 생각했으나 제가 정말 직원이란거 확인하고 경계를 조금씩 풀더군요.
리조트로 데이투어 간다길래 저도 쉬는 날이라 할 일 없으니 하루동안 같이 놀아주겠다고 했습니다. 배 안에서 대화를 하며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었구요. 일본 RN 간호사인데 호주에 워킹홀리데이 와서 6개월간의 일 마치고 여행 중이었음.
둘이서 리조트 주변 해변길, 산길 걸으며 서로 손잡아 끌어주다가 조금씩 스킨쉽도 하게 되고.. 가볍게 쨉 날리듯 짓궂은 질문들도 해보고..
그러다 넓은 바다가 보이는 어느 벤치에서 첫키스를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만난지 4시간 정도 지난 오후 1시 조금 넘은 벌건 대낮이었음. ㅎㅎ
집사람의 얼굴, 말투, 행동 모두 귀엽기도 했고.. 왠지 이 때가 아니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키스해도 될까?”
라고 물어보니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키스 하려고 벗은 선글라스 뒤에 가려져있던 예쁜 두 눈, 빛나던 그 눈망울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는.. ㅎㅎ
당시 집사람도 영화 ‘비포 선라이즈’를 좋아한다길래 용기를 내었던 것 같아요. 미국, 프랑스 청춘남녀가 기차에서 우연히 만나 비엔나에서 하루를 보내면서 사랑에 빠진다는 스토리. 집사람이 그 영화를 몰랐더라면 키스는 상상만으로 끝났을듯.. 잘못하다간 리조트 손님 희롱으로 바로 해고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ㅎㅎ
나중에 그 때 저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어 키스를 허락했냐 물어보니 자기는 버릇없는 와가마마 막내딸에 저축 없이 돈도 막 쓰면서 살아왔는데.. 왠지 제가 항상 화 안내고 자상하게 자기를 잘 이끌어 줄 것 같다고 생각했다더군요.
그렇게 서로에 대한 호감을 확인하고 저녁까지 돌고래 먹이도 주며 놀다가 헤어진 후.. 집사람은 시드니, 멜번 거쳐서 서쪽 반대편 퍼스로 갔고.. 저는 섬에 남아 일을 해야했답니다. 한 달 반 지나 퍼스에서 다시 짧게 만나긴 했지만 몇 달 후 집사람은 일본으로 돌아갔구요.
장거리 연애하면서 연락하기도 힘들고, 때로는 의사소통도 힘들어 헤어질 뻔한 위기가 여러 번 있었는데.. 그 때마다 집사람이 더 많이 양보를 했던 것 같네요.
결혼 얘기는 둘 다 서른 가까워지니 자연스럽게 나온 것 같은데.. 둘 다 결혼생활이 어려울거라 심각하게 생각 안 했던듯.. 예전에도 언급했지만 집사람은 ‘진짜 이상한 놈이면 바로 이혼하고 일본 돌아가면 되지 뭐가 문제냐’는 식이었고.. 저는 불만없이 감지덕지한 상황. ㅎㅎ
결혼 전까지 얼굴 본 날이 열흘 조금 넘어 상대방에 대해 모르는 것 투성이었지만.. 처가에서 결혼허락도 쉽게 받았고.. 집사람은 요리, 살림, 내조, 육아에 본인 일까지 모든걸 완벽하게 잘 하구요. 비록 결혼 전 저축은 안 했지만 결혼하고 낭비는 전혀 안 한다는..
거짓부렁이 주작 환타지 소설 아니냐 더러 주장하시는 분들 계시겠지만.. 포텐게시판에서 닉네임 유나유진 검색해 예전글들 읽어보시면 거짓이 아님을 알게 되실듯.. 좀 더 개인적인 얘기까지 하면 더 믿지 못할 일도 많음. ㅎㅎ 그렇다고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지는 마시길..
결혼생활 하면서 재미나는 에피소드도 많이 있었지만 너무 글이 길어지는 관계로 이만 마무리 하죠.
아.. 펨코에 다음 달 있을 수능 준비하는 분들도 많이 계실 것 같은데 혹시 좋은 결과 못 받으시더라도 너무 크게 실망하지 마시길.. 20대엔 조금만 옆을 보면 인생의 방향을 바꿀 기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용기를 갖고 잘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저같은 사람도 바꾸었기 때문에.. 뜬금없지만 아주 오래 전 수능 망치고 집에 돌아가던 때가 생각나 말씀 드렸네요.